여기 오고 난 후 처음으로 공항을 다녀왔다.
Schiphol 공항, 지난 1월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엔 낯선 곳이었는데, 오늘 다시 가니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.
여기 와서 이제 고작 세 달도 안 되었는데 (길다면 긴 시간이지만..) 길에서 마주치는 것들이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은 걸 보면 꽤 익숙해지기는 한 모양이다.
많이 변한 것들도 있고,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고..
처음 한 동안은 BB와 툭하면 부딪혔는데, 이제 그 시기도 대강 지나간 듯 하다.
마치 우리가 처음 결혼하고 나서 처음 두 세 달간 죽도록 싸웠던 것 처럼.. 여기 와서 두 달 간도 엄청나게 부딪혔다. 한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온 내 입장에서는 졸지에 백수(좋게 말해 구직자) 신세가 되어 집에서 뒹굴거리게 된 데 대해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. BB도 조심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정말 별 것도 아닌 일들로 투닥거렸다. BB가 별 뜻 없이 하는 얘기들이 나를 무시하는 뉘앙스로 들리곤 했기 때문이다.
이놈의 젠장할 거주증이 언제쯤 나올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, 다행인 건 이제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거주증만 나오면 바로 일을 시작할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둘 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다. 이런 희망이 없었으면 둘 다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겠지만..
속모르는 사람들은 능력있는-_- 마누라 둔 덕에 일도 안 하고 푹 쉬니 부럽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나는 아내를 출근시키고 집에서 노는 남편이라는 역할이 얼마나 못 할 짓인지 절실히 느꼈다. 뭐.. 한 달 쯤은 괜찮을 수도 있고, 두 달도 괜찮을 수 있다, 갈 곳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라면..
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50% 먹고 들어간다고 하는데, 쌩판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짐작은 했지만, 50% 먹고 들어갈 게 없는 남의 동네 똥개 신세가 이렇게 힘든 걸 줄은 몰랐다.
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호주로 떠난 많은 기술이민자들이 오랫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결국은 청소라는 일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처럼, 그런 것이다. 그 사람들도 한국에서는 다 똑똑하고 나름대로 자기 바닥에서는 자기 밥그릇 제대로 챙겨먹던 사람들이었던 거다. 그런데.. 자기 동네에서 똑똑하고 잘 나가던 그 양반들이 남의 동네에 가니까 졸지에 바보가 된 거지. 그 동네는 짖는 방법이 달랐으니까. 그 동네로 가기 전에 그 동네에서 짖는 법을 미처 제대로 못 배우고 간 것이다. 이 동네도 마찬가지다. 전에 살던 동네에선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짖는 법을 아냐고 물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..
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에서 IT 직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영어면 충분하다고 한다. 굳이 Dutch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..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. 경기가 좋던 시절에, 사람을 왕창왕창 뽑던 시절에는 분명 영어만 해도 뽑아주는 데가 꽤 있었을 것이다.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다. 작년에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거대 기업들을 휙휙 자빠뜨리고 있고, 그나마 남아 있는 회사들은 그런 꼴이 되지 않기 위해 있는 사람들마저 내보내고 있는 형편이다. (아마.. 이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회사는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 밖엔 없는 것 같다. 사장님이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시는 분인 듯..)
여기 와서 받은 몇 번의 구인 정보 중엔 일어를 할 줄 아는 PM.. 이런 것도 여러 번 있었다. 아 정말이지.. 일본어라도 열심히 공부해 놓을 걸.. 어찌나 아쉽던지.. 남의 동네 짖는 법은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. 잘 짖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.
BB가 출장 간 2주 동안 BB 말마나따 Dutch 공부나 좀 해봐야겠다. 조금 공부한다 해서 어디 가서 당장 Dutch 할 줄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, 또 혹시 아는가.. ㅎㅎㅎ
그나저나 거주증이나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. 다음주 안에 거주증 나오고, 당장 출근할 수 있다면 혼자 있는 2주가 그리 심심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. 이제 나올 때도 된 거 같은데.. 설마 세 달 꽉 채우고 나오지는 않겠지?... 이왕 나올 거면 빨리 좀 나와라.. 집에서 노는 것도 지친단 말이다. 나도 다시 일 좀 하자..
n/Live Together Project